128회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좋다

우리 어르신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 중에 ‘하숙생’이라는 가요가 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가사임에도 나그네 인생의 덧없음을 공감하는 많은 이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이 불리고 있다.

‘나그네’는 자기 집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면서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여행 중인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라는 것을 공감하기에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여행 중인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여행길이 편하다. 그걸 알면서도 여행 중에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염려와 편안하게 여행하려는 욕심 때문에 짐은 점점 많아진다. 우리도 한국방문을 하고 돌아올 때면, 우리 어르신들을 섬기려는 마음에 독일에서 구하기 힘든 한국의 식자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물건을 하나라도 더 가져오려다 보니 여러 개의 짐을 힘들게 가져오게 된다. 여행하려면 짐이 필요하지만, 짐이 많으면 결국 그것이 오히려 여행을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고달픈 인생길을 더욱 힘들게 하는 많은 짐들이 자꾸 생기게 되고, 이 짐들이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게 되면서 건강에 대한 걱정도 늘어나게 되고, 경제적인 부담과 자식들 걱정은 물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나라와 세계의 문제까지 걱정하며 무거운 짐들을 자꾸 쌓아간다.

이런 인생을 살아갈 때,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평안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도 ‘여러분의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살피고 계십니다.’라고 짐을 줄이는 지혜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사노라면 짐은 줄지 않고 자꾸 늘어만 간다. 나그네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짐을 줄이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파독 1세대를 주로 섬기는 “해로”에서 하는 일은 참으로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관심은 건강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이다. 하지만 ‘해로(偕老)’라는 말처럼, 우리 어르신들이 함께 복되게 늙어 가도록 돕는 모든 일이 해로가 하는 일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건강을 잘 유지하도록 함께 돕는 일에서부터 몸이 약해지고 병이 들었을 때 도움을 드리는 일과 장례를 준비하도록 돕는 일과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해로가 하는 일들은 많다. 또한 이런 일들을 함께할 다음 세대들과의 소통과 연대도 해로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는 일이다.

특별히 해로에서는 임종하신 분들의 짐을 정리하는 “유품 정리”도 가끔 도와드리고 있다. 말기 암 등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떠날 준비를 잘하신 분들도 막상 돌아가시고 나면 평생 가지고 살아온 옷과 살림살이와 각종 짐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본다.

유품이기에 혹시라도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은 아닐까 살펴야 하고, 쓰던 것이기는 하지만 살 때는 꽤 비싸게 값을 주고 산 좋은 물건도 있고 아직은 쓸 만한 물건들도 있어서 함부로 버릴 수 없기에 유품 정리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릇과 옷, 각종 가재도구를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도 있지만, 남은 사람들이 고인이 평생을 사용하며 살아온 많은 짐들을 정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지고 있는 많은 짐 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혹시 사용할지 몰라서 가지고 있는 것을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금 나누어주는 것이 짐을 줄이는 지혜가 되고, 유품을 정리할 가족이나 친지들의 짐을 덜어주는 배려가 될 것이다.

해로의 유품 정리와 물건 나눔

해로에서는 지난 6월부터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프로그램으로 “인생 수첩”을 처음 시작하였다. “인생 수첩”은 노년기에 준비해야 하는 여러 가지 서류들을 작성하고 정리하도록 돕기 위한 교육이다. 유언장, 사전의료의향서, 법적대리인 위임장 작성을 돕고, 건강 상태 악화 시에 필요한 문서의 작성 방법과 보관법에 대해 강의도 하고 문서로 작성하여 보관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은 교포신문 생활지원단과 함께 지면을 통해서 건강정보로 알려드린 바 있다. 또 한인회나 여러 모임에서 강의를 통해 진행해왔고, 오랫동안 개별적인 상담을 통해 준비시켜드린 내용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이 차일피일 미루며 서류작성을 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해로는 그동안 어르신들을 섬기면서 갑작스럽게 치매와 사망 등의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류의 미비로 곤란한 일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어려움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하여, 특별히 자녀가 없거나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분들을 위해 “인생 수첩”이라는 교육을 시작하였다. 서류작성을 꼼꼼하게 도와드려야 해서 매회 12명으로 인원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쉽지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인생 수첩” 교육은 단순한 서류작성을 넘어, ‘내 삶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한 걸음씩 마지막을 준비해 가는 과정이 되게 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자기의 뜻을 반영한 장례 계획을 세워 준비하며, 나 다운 삶의 마침표를 그려보며 의미 있게 생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도우려고 한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의 의미들이 씨앗이 되어 더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시편 90:12)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418호 16면, 2025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