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기 일상생활지원 봉사자 교육수료식

84회 우리가 함께 돕겠습니다!

네덜란드에 호그벡(Hogeweyk) 마을이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동네이지만 이곳 주민 대부분은 치매 노인들이다. 이곳은 치매 노인들이 모여 사는 일종의 요양원이다. 이곳에 사는 치매 노인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교회도 가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러 상점에도 간다. 사실상 치매 이전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생활을 한다. 이곳에는 미용사, 슈퍼 점원, 거리 청소부까지 훈련된 전문 요양보호사들이 일하고 있다. 또 운영비 전액을 정부가 특별 지원하고 있고,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은 무료이다. 여기에서는 치매 환자들이, 지난날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웃과 차를 마시고 노래도 하고 머리도 손질하며 인간답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기쁨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이런 돌봄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어서 약 복용량이 줄고, 병의 진행 속도도 느려지는 효과가 있어 치매 노인들이 비교적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곳의 목표는 치매 노인들이 평범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치매 환자들은 갇혀 지내야 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일반적인 사람으로 대하며 돌보고 있다. ‘병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운영 철학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이런 호그벡 마을을 벤치마킹한 치매 마을들이 프랑스 스위스 영국 등 세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호그벡 마을은 치매 환자를 위해 특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호스피스와 다른 환자들에게도 같은 목표와 방법을 적용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호그벡 마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우리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이 이제 80세 전후의 연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80세 이상의 노인 4명 중 한 명은 치매를 앓는다는 통계가 말해 주듯이, 최근 우리 어르신들 가운데는 치매 환자가 많이 생겨나고 있고, 날이 갈수록 인지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꼭 치매가 아니더라도 연세가 들어가면서 혼자서 생활하시기 어려운 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이분들을 돌보는 공동생활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물론 독일에는 질병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요양원에 입원하여 생활할 수 있는 의료제도가 있지만,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민자인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면, 독일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84회 우리가 함께 돕겠습니다!

  독일에서 소수인 우리 동포들만을 위한 호그벡 마을과 같은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동포들을 돌볼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냥 손 놓고 마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뜻을 세우고 꿈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조상 대대로 개인의 자유로운 협동과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연합을 통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품앗이와 두레와 같은 서로 돕는 협력 활동을 통해 협동하고 돕는 지혜를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현대의 질병과 노령화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지혜와 힘을 모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해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 동포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다. 해로는 창립 초기부터 지속적인 봉사자 교육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을 배출해 왔다. 자원봉사자들은 혼자서 생활하기 어려운 우리 동포들의 가정을 찾아가서 가사 도움, 병원 동행을 비롯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움(Angebot zur Unterstützung im Alltag)을 제공하고 있다. 줄여서 ‘AUA 서비스’라고도 불리는 이 봉사는 요양 등급(Pflegegrad)을 받은 분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해로에서 지원하는 서비스이다. 사단법인 해로는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식 기관 중에서 베를린 주정부의 인가를 받은 유일한 이민자 단체다. 요양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매월 2회 정도 방문하는 봉사는 우리 어르신들에게는 큰 힘과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해로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받는데 필요한 요양 등급에 관한 상담과 신청서 작성을 도와드리고 있다. 몸이 불편하신 분 중에서 요양 등급을 받지 않으신 분은 전화 상담을 하여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지난 8월 23일에는 일상생활 도움 서비스(Angebot zur Unterstützung im Alltag)를 담당하는 제5기 AUA 자원봉사자 교육 수료식이 있었다. 이날 10주간의 교육을 마친 10명의 자원봉사자가 수료했다. 우리 동포 어르신들을 섬기려고 젊고 유능한 봉사자들이 자원하여 교육받는 것이 너무도 고맙고 귀한 일이다. 어르신들의 질병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어르신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재독간호협회나 그뤽아우프 회원들도 이제는 노령화가 되어 적극적인 봉사활동이 어려운 연세가 되었다. 이 문제는 젊은 세대들이 나서서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다. 젊은 세대들이 우리 어르신들을 돌보려고 자원봉사자가 되는 일은 우리 교민사회 발전에 커다란 힘과 활력소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해로가 있는 베를린만이 아니라 독일 주요 도시마다 해로와 같은 단체가 생겨나고 봉사자들이 세워져서, 우리 1세대 파독 근로자 어른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