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해

87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해

태평양전쟁 때,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자신의 책상 위 액자에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두고 매일 암송할 만큼 좋아했다고 한다.

사무엘 울만은 그의 시 <청춘>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다네…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라네.”라고 노래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이 많지만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고, 지루하기 쉬운 노년의 일상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잘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힘이고 지혜다.

해로가 하는 일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직접적으로 도와드리는 일 외에도, 연로해 가는 1세대 어르신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들을 찾아드리며 보람을 드리고, 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비록 몸은 아프고 불편해도 해로의 작은 도움의 손길들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게 도와 드림으로써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하게 드리려고 많은 봉사자가 함께 열심히 섬기고 있다.

베를린에는 연로하셔서 혼자 살고 계시는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많은데, 혼자 계시면서 하루 종일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생활은 어르신들에게 매우 좋지 않다.

해로에서는 해로 사무실까지 나오실 수 있는 거동이 가능한 분들을 대상으로 매주 노래교실과 기타 교실, 그리고 존탁스카페 등과 같은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의미와 생기를 유지하게 해드리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모임에 나오셔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만나서 나누는 대화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마음을 나누는 시간과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편한 한국말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어르신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거동이 어렵거나 사정이 있어서 이런 모임에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도 많다. 해로가 형편이 나아지면 이런 어르신들을 차로 모시고 오거나, 가정으로 방문하여 더 많은 분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87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해
해로 바자회 (일일점방)

해로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섬김의 공동체다. 봉지은 대표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다. 상근하는 직원은 2명밖에 없지만, 어르신들을 가정으로 방문하여 직접적으로 섬기는 봉사자도 있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자원하여 봉사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헌신된 봉사자들의 손길들이 모여져 해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큰일도 해내고 있어 감사하다.

지난 10월 12일에는 해로에서 섬기고 있는 독일 할머니를 위해 노인여가센터를 방문하여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였다. 첼로와 바순, 피아노 연주자와 성악가가 함께한 작은 음악회를 통해 독일 어르신들에게 음악으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독일 노인들은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들과 함께 독일 하늘 아래서 살아온 분들이다. 이분들도 연로하여 장애가 생겨서 제한적인 활동만 하실 수 있기에, 해로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재능과 시간을 드리는 헌신으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드렸다.

또한 10월 21일에는 해로가 섬기고 있는 “방문형 호스피스” 활동을 위한 “자선 바자회”를 열었다. 그동안 춥고 비가 오는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이날은 모처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행사를 축하해 주었다.

이날 판매 물품은 해로에서 그동안 기증받은 물품들과 봉사자들이 집에 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였다. 떡볶이, 김밥과 만두, 차를 비롯한 각종 먹거리가 바자회를 풍성한 잔치로 만들어 주었다. 봉사자들이 쓸모 있는 옷과 그릇, 여러 가지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매장을 가득 채워주었다. 온 가족이 총동원하여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녀들에게 유익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봉사자도 있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코너는 지난 베를린마라톤 대회 기간에 한국의 “MO스포츠” 신발회사에서 판촉 활동을 마치고 해로에 기증한 슬리퍼를 판매하는 코너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최고급 품질의 기능성 슬리퍼인데, 최신 유행하는 새 제품을 매우 저렴하게 판매하여 동네의 독일 분들도 많이 사 가셨고,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냐고 확인하고는 사무실과 가정용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를 구매하는 분들도 있었다.

물건을 판매하는 봉사자들과 구매하는 분들이 함께 어울려 한마당 잔치를 벌이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소리가 가득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으로 사는 것 같지만, 돈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

함께 하다 보면 부대끼고 삐걱거릴 때도 있다. 하지만 상처를 남기는 전쟁만 아니면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함께”라서 좋다. 내 것으로 다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하고 내놓는, 사랑과 정이 넘치는 해로의 봉사자들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행복한 하루였다.

봉사는 멀리 바라보고 해야 지치지 않는다. 해로의 봉사는 긴 호흡으로 멀리 가야 하는 일이다. 멀리 가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는 봉사를 선택할 것이다.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우리 다 함께 파이팅!

“한 사람으로서는 당해 낼 수 없는 공격도 두 사람이면 능히 막아낼 수 있으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 4:9)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36호 18면, 2023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