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89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한국에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운동은 1984년에 ‘기독실업인회’ 조찬모임에서 당시 서울대 손봉호 교수가 “냉소 받는 귀족보다 충성스런 청지기로 살자”고 하며 재산의 사회 환원을 호소하면서 출발하였다. 이 제안이 촉매제가 되어 지금까지도 신실한 기독교인 사업가들에게서 조용히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 운동은 “5무(無) 원칙과 3유(有) 지침”을 가지고 있다. 5무는 무강령, 무홍보, 무사업, 무조직, 무회비다. 조직의 모임도 없고 대표도 없다. “3유 지침”은 해가 바뀔 때마다 유언장을 새로 쓰기, 재산의 3분의 1은 유족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유산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기, 또 이 운동이 누룩처럼 소리 없이 번져가도록 친지들에게 권하는 것이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새해에 유언장을 새로 작성해서 가족들에게 읽어준다. 재산의 3분의 1은 후손에게 남기고, 3분의 1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고, 3분의 1은 사회에 기부한다는 내용이다. 회원들이 우려했던 것은 가족들의 반응이었는데, 90% 이상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언장을 읽은 후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부모님을 더 존경하게 됐다고 회원들은 전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고 자립 의지가 더 강해지는 것을 보게 되면서, 이전보다 기부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유언장은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작지만 ‘위대한 약속’이다. 매년 유언장을 쓸 때마다 자기의 죽음 이후를 내다보기에 자신들의 생활 자세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해마다 유언장을 새로 쓰다 보니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고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고 한다. 이런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운동의 실천 강령에 따라 대외적인 홍보를 하지 않지만,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은 기증 사례들이 아주 많다. 이 운동을 제안한 손봉호 교수도 그동안 많은 기부와 나눔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고, 지난해에는 13억 원 상당의 집과 재산을 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하고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책임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는 시간과 건강과 물질 등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청지기 정신”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해로”가 유지되고 있다. 해로는 지난 1년 동안 아주 많은 일을 했다.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을 포함하여 치매 환우와 호스피스 환우를 섬기고, 교포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가 섬기는 해로의 여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봉사가 필요한 저 낮은 곳에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섬긴 봉사자들의 헌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귀한 것이다. 이분들의 수고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 보상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1월 9일에는 “해로 자원봉사자의 날” 행사가 열렸다. 올해 해로에서 봉사하신 분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도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다른 봉사자의 섬겨온 모습을 보며 새롭게 봉사를 배우는 자리이기도 했다. 핵심 자원봉사자 3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해로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봉사자들을 맛있는 이태리 식당으로 초대해서 뷔페로 대접할 수 있었다. 해로 사무실 근처에서는 음식 맛이 좋다고 인정받는 동네 맛집이었다. 지금까지 해로의 형편으로는 이런 성대한 행사를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특별히 “독일 사회참여 및 자원봉사를 위한 재단(DSEE)”의 재정 지원을 받아 식사와 선물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할 수 있었다. 모든 봉사자들이 상을 받아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올해 가장 뛰어난 섬김을 하신 4명의 봉사자를 선정해서 선물과 함께 봉사상을 드려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렸다.

  해로의 자원봉사자들은 대학생에서부터 은퇴하신 어르신들까지 다양하다. 젊은 봉사자들이 대부분이지만, 파독간호사로 오셔서 70대의 연세가 되어서도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도 있다. 최고령 봉사자는 82세로, 직접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는 못 하시지만, 평생 음식과 관련한 일을 해오셨기에 음식으로 봉사하고 계신 K이모님이시다. K이모님은 어르신들의 생신에는 미역국을 끓여주기도 하시고, 여러 행사 때마다 김밥과 만두, 잡채를 만들어 많은 손님을 대접해 주셨다. 만두와 찐빵도 손수 만들어서 판매하여 해로에 후원금으로 주고 계신다. 하늘에서는 상징적인 봉사상보다 더 크고 영원한 상을 받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섬김을 가장 좋은 유산으로 받은 자녀들도 부모님처럼 모범적으로 사는 축복을 받을 줄 믿는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은 재산만을 유산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장 귀한 부모의 삶을 유산으로 남기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자녀가 보고 배운 ‘부모님의 섬기는 삶“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귀한 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섬김의 삶도 사회와 이웃에게는 행복을, 자녀들에게는 축복을 선물로 남기는 정말 귀중한 유산이라 믿는다.

자원봉사자들의 귀한 섬김에 감사하며 축복으로 응원을 보낸다.

89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여러분도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35)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