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회 세대공감 사진전

첼로 선율이 작은 공간을 감싼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가득한 사람들은 82세 첼리스트의 연주에 녹아든다. 1965년에 고국을 떠나 쾰른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한 양유나 첼리스트는 은퇴한 후 딸이 사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사단법인 <해로>와 연을 맺었다. «세대공감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프닝에 참석하여 기꺼이 축하 연주를 해주었다. 그녀와

39회 내어주는 사랑

카메라가 돌아간다. 앵글 속에는 젖은 흰 화장지가 둘둘 감긴 콜라병이 보인다. 콜라병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웃으며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을 한다. “여기는 콜라가 무척 귀한데 간신히 구해도 냉장고가 없어서 미지근한 콜라로 마셔야 해요. 이 더위에 정말 괴로운 일이죠. 그래서 궁리하다가 과학 시간에 배운 원리가 생각나서 이렇게 젖은

38회 함께 가는 삶

<일대기 작업> 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현재의 나에 투영하여 ‚나’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로> 자원봉사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은 ‚삶의 방패’를 각자 그려 보는 시간을 가지겠어요. 예전에 방패나 깃발에 문장을 그려서 자기 가문을 표시했듯이 나를 표시할 방패를 그려보세요.“ 자원봉사자 교육을 담당하는 사단법인

37회 다문화 축제 마당에서

지난 토요일 오후, 베를린 한 귀퉁이에서 작은 동네 축제가 열렸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베를린답게 축제 이름이 “다양성 축제”. 베를린 빌머스도르프 구에서 주최한 이 축제는 오대양 육대주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축제를 주관하고 진행한 곳은‚판게아 하우스‘에 둥지를 튼 이민 단체들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가들이다. 먼 옛날, 지구의

36회 장례 꽃장식을 배우는 시간

스스로가 예쁘면서 주변까지 예쁘게 만들어준다는 꽃은 언제 봐도 좋다. 어느 여름날, 들판에 가득한 야생화를 꺾어 와서 화병에 꽂은 후 지인에게 자랑했다. 그것을 본 지인은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좀 예쁘게 꽂지.. 꽃도 예쁘게 꽂힐 권리가 있어요!“ 내 눈에는 이미 무조건 예쁜데 그 지인이 쓱 쓱 만져주니 갑자기

35회 영원한 안식처에서

„사망시 불에 태우지 말고 그냥 묻어주기. 연락처: ……..“ 지난봄 세상을 떠나신 Y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며 찾아두었던 할머니의 자필 메모가 서랍 속에서 튀어나왔다. Y 할머니는 이미 자신의 묫자리를 예약해두고 계셨기에 돌아가신 후 장례절차가 수월히 진행되었던 분이다. 장례식 후 이미 석 달이 지났기에 묘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져서 퇴근길에

34회 보고싶은 고향

오늘은 영숙 할머니 댁의 빨래를 도와드리는 날.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자원봉사자가 여름휴가를 떠난 터라 내가 대타를 뛰는 날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사시는 영숙 할머니의 독방 아파트에는 세탁기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다. 다행히 건물 지하에 동전 세탁기가 있어서 할머니는 그곳을 이용하신다. 공용이라 예약해 둔 시간에만 세탁을 할

33회 첫사랑 편지

"샤이-쎄-에-.."편지를 읽던 70대 중반의 여류 화가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한숨인지 욕설인지 모호한 소리를 흘린다. 오늘은 언니가 치매 요양원으로 들어간 날. 언니를 요양원에 데려다주고 빈 집으로 돌아온 그분은 나와 침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이사랍시고 요양원으로 가져간 것은 작은 서랍장 하나와 옷 가방 달랑 하나. 살던 집은 한 달

32 회 세대공감 파독 사진 공모전

사단법인 <해로>에서는 옛 사진을 볼 기회가 많다. 직접 사진을 가지고 오시는 분보다는 환우 방문 중에 우연히 보게 되거나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분의 짐을 정리하며 보는 경우가 더 많고 파독 당시 상황을 취재하려는 젊은이들을 위해 <해로>에서 어르신과의 인터뷰를 주선하며 더불어 옛 사진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31회 나 죽으면 입혀주오

“팀장님, 죄송하지만 우리 어머니 방의 옷장 안쪽에 제가 수의를 넣어 두었는데 좀 찾아봐 주시겠어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한없는 송구스러움이 담겨있다. 요양원에 계신 Y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였고 어머니가 계신 베를린으로 한걸음에 달려오지도 못하였다. 코로나로 모든 여행이 제한된 때여서 당일도 익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