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삶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너는 결혼은 했냐?” 80대 치매 어르신에게 중년의 나는 한없이 어려 보이나 보다. “네에, 저 아줌마예요. 학생이 아니에요.” 뵐 때마다 하시는 똑같은 질문이 벌써 스무 번도 더 반복된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나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똑같다. “아기는 생겼냐?” “네, 벌써 아들이 둘이나 있어요.” “어머나, 넌 아들이 있어서 좋겠구나. 난 딸만 셋이 있어.” “이모님, 요즘은

21회 인터넷을 배우는 할머니

“그치도 요즘 기계를 좀 볼 줄 알우?” 관절염과 골다공증이 심해 온몸이 아프시다는 H 할머니를 방문해 요양 상담을 하고 있는 중에 어르신은 조심스레 다른 이야기를 내게 꺼내신다. “요즘 젊은 아이들만큼은 잘하지 못해요. 그래도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컴퓨터에 앉아 일을 해야 하니 조금은 해요.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 아는 만큼

20회 2020 자원봉사자 상

방문을 슬며시 연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 얼굴은 보이는데,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다시 만지작거리니 목소리가 들리고 그제서야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반가움에 손을 내밀지만 마치 영혼의 것처럼 맞잡을 수는 없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화면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만난다. 돼지해에 복을 가져올 줄 알았던 2020년은 바이러스의 무덤

19회 노년과 디지털

1440년, 독일 마인츠에 사는 금 세공업자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의 발명으로 지식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이룩한 인쇄술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첫발이었다. 이는 이후 일어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상은 한 번쯤 충격적 사건과 함께 문화 패러다움의 변화를 경험한다. 20세기 이후의 키워드는 단연 멀티미디어다. 종이문화의 근간이 된

18회 죽음 곁에 선 천사, 호스피스

그는 이승만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고위간부를 지낸 분이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지나왔던 인생의 그늘로 가득했다. 하지만 풍채를 지탱했을 골격은 품위 있고 곧바랐다. 시대의 영욕에도 버텨왔을 끈기와 자신감이 풍겨났다. 비록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아 있는 시간을 세고 있었지만 호령을 누렸을 위엄은 살아 있었다. 그래도 어쩌랴. 그는

17회 ‘자신 사랑하기’의 첫 걸음

내가 아는 파독 간호사 어르신 한 분.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다. 언젠가, 앞으로 하고 싶은 소원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정을 잘 마치고 평화롭게 죽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욕심 없는 소박한 소망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제외할 것 없이 죽음의

16회 제5회 치매예방의 날 행사

2016년, 베를린 한인사회에서 화제를 모은 사건이 있었다. 베를린에 소재한 작은 돌봄단체의 행보였다.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며, 노년시대 떠올리고 쉽지 않은 단어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며 담론화를 시작한 것. “난 아직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몰라!” “언젠가 나도 그런 때가올지 몰라. 늘 깜박깜박해!” “멀쩡하던 김씨도 그거 걸렸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행사장에 몰려든 이들은

15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

이국 땅에서 홀로 나이 들어가는 것은 고독의 범주를 넘어선 생활의 문제다. 젊었을 때는 노년의 삶을 예측하지 못했다. 휴가 때면 여행을 다니고 주변에 한인과 독일인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서 주변의 친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특히 홀로 된 어르신들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 난감해진다.

14회 베를린에서 봉사를 마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무언가 할 일이 생긴다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몰랐던 부분을 새로 알게 되고 나 자신과 미래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자원봉사 교육생 K)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3회 치매환우와의 소통, 어떻게 할까

어느 파독광부 어르신의 이야기다. 광부생활 3년 계약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다 독일 정착을 결정했다. 다행히 직업을 구했다. 매일 갇힌 공간에서 기계만 만지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딱딱한 기계와 홀로 씨름해야 했던 그는 몇 달이 지나자 미칠 것처럼 답답해졌다. 소통의 부재 탓이었다. 이후 간호사인 아내의 권유로 선택한 것이